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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노를 다스리는 일
    Handal/2020돌아보기 2020. 12. 28. 23:31

     지금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서류상 작은아빠 = 아빠의 동생 = 이혼했으니 삼촌이다. 우리가 어릴 땐 돈 잘버는 사람인 줄 알고 고등학교나 대학 입학 선물로 아빠가 전자기기를 뜯어내곤 했지만 친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늦게 결혼한 편이었는데, 별로 우리랑 맞는 사람도 아니었다. 일년에 두 번 만나는 사이고 어른이니까 친절하게 대했지. 하지만 엄마가 그 사람에게서 일을 배우러 가기 시작하고, 어쩌다 보니 바지사장이 된 아빠와 실질적 사장(본인이름으로 할 수 있는게 없다.)의 말을 들어야만 하는 상황 속으로 내가 들어가게 되었다.

    ‘그래도 친척이니까.’
    아빠 말씀으로는 내 돌잔치에도 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형의 자식이고 조카이며 매년 명절마다 봤으니, 출근해서도 아는 사이라고 마음을 편하게 먹었다. 하지만 어림도 없지. 지금 그 메세지들을 돌아보면 너무나 수치스러워서 그 시절의 나를 없애버리고 싶을 정도이다. (메시지에 친한척하는 말투와 온갖 것들을 신경쓰는 말을 했었음. 왜 그랬니 그때의 나...:( ) 첫 직장이고 그래도 자유로운 분위기라, 내가 꿈꾸는 것들과 시도해보고 싶은 것들을 해 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5인 미만의 사업장이 그렇듯 사장의 말은 곧 법이고, 그 법은 사장의 기분에 따라서 늘 바뀌곤 한다. 오늘의 사과가 내일은 귤이 되어있다면 나는 사과를 귤이라고 불러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나는 무슨 말을 들을지 모른다.

    “너는 뇌가 없니? 원숭이야?
    너 정도 되는 애가 왜 생각을 안하니? 관심 좀 가져라.
    서우(본인 둘째아들)도 이런 생각은 하겠다.
    닭대가리야? 말을 못 알아 듣니? 못한다고 하면 다야?”

    사장님은 티를 안낸다고 하지만 술을 드시고 하는 전화가 대다수이고, 보통 음주하시지 않으면 메신저 안에서 일한다. 일하는 곳에서는 내가 없고 컴퓨터보다 조금 나은 기계가 앉아 있을 뿐이다. 이렇게 3년간 지내면서 부당한 것들과 이해할 수 없는 시스템을 포기하고 받아들였고, 남은 2년간은 언젠가는 복수하겠다며 이를 갈고 감정을 꾹꾹 눌러담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올 것이 왔다. 사무실 업무를 2명이서 해결하려니 벅차기 시작해서 사람을 뽑을거면 뽑아달라고 했으나, 이상한 사람을 데려왔다. 분명히 사장님 전언은 ‘그래도 니가 이 팀장보다는(새 직원) 경력이 있고 하니까 니가 다 정리해서 나한테 보고하는게 맞다. 니가 이 팀장보다 위다.’ 라고 했지만 이미 직급부터가 그 사람은 팀장이고 나는 대리다. 그리고 그 팀장은 어느새 새로운 사장님의 비서처럼, 직속으로 일을 처리하고 사무실에 출근은 하지 않는다. 물론 에피소드를 다 쓰자면 책 한 권도 나올 것 같지만... 내가 이 팀장에게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한 것을 시작으로 사장님은 나에게 온갖 욕들을 쏟아내셨다. 새 사람과 일하는 일주일동안 나는 탈모가 생기고 속 병이나고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이럴 때일수록 쉬어야한다며 수녀님께서 피정을 추천해주셨다. 두말없이 가겠다고 대답했고 - 종교적인 것을 떠나서 정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왔다. 애초에 피정이라는 것이 ‘피세정렴’ 세상을 피해 깨끗한 마음올 기도한다는 것인데, 기도보다는 마음을 비우는데 힘쓰고 왔다. 내가 그 사람에게 화를 내는 것은 욕심이 가득해서 였고, 마음을 비우고 바닥에 주저앉고 펑펑 울고 나니까 조금 정리가 되었다. 나는 이런 상황들에서 벗어나서 쉬고싶은 마음이 가득했던 것 같다.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다음 발걸음을 위해서 꼭 필요한 휴식을 취한다고 생각하니 부담스럽지도 않았고, 집에서도 걱정말고 쉬고 오라고 지지해주셔서 2박 3일을 먹고-자고(8시간을 꽉 채우고 낮잠까지)-명상하는 리얼 휴식프로그램에 잘 다녀왔다.

    다녀와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명상과 쉼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쉰다고 해서 다 노는 것이 아니라 머리를 비우고 욕심을 비우는 시간임을 깨닫고, 다음 것을 위해 준비하는 꼭 필요한 시간이라고 알게 되었다. 뭔가 여유가 없어졌다고 생각이 들 때는, 한 번씩 강제적으로 피정에 가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코로나만 아니라면 속이 복잡해서 뒤틀리고 있는 지금, 어디라도 훌쩍 떠나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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