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일인줄만 알았던 코로나19
출근해야하니 정신을 깨워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옆을 보니, 동생이 일어나 있었다. 이상하게 밤중에 뒤척이며 이불 장을 열어서 뭔가를 꺼내 덮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저 어제의 몸살기운 떄문에 추워서 그런가보다 했다. 이상한 점이 하나 둘이 아니었는데 얼른 눈치채고 알아봐줬어야 하는데.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는 중에 동생은 본인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사람과 계속해서 경직된 목소리로 통화를 하고 있었다. 내 기억의 시작은 인적사항을 불러주며 (이름, 생년월일, 핸드폰번호 지금 있는 가족들, 가족들 번호 등..) 나가라고 하는 손짓이었다. 나는 신용카드 심사인가 싶었는데, (아침 8시 30분에 심사를 할리가 없고, 뜬금없이 신용카드는 어디서 나왔으며 - 잠이 덜 꺤게 분명했다) 어제 걔가 코로나 검사를 받은걸 기억해내고는 입모양으로 ‘설마 확진?’ 이라고 물어봤다. 그리고 끄덕이며 마스크를 쓰고 휘적이는 손짓에 옆에있는 가방을 주섬주섬 챙기며 문을 닫고 나갈 수 밖에 없었다.
밖으로 나가서 들은 통화내용을 대충 설명한 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부모님과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 출근시간은 코앞으로 다가왔고, 오늘도 역시 출고건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결론은, 급한일을 사무실에서 처리한 후 컴퓨터를 챙겨서 귀가하고 다같이 검사를 받으러 가는 계획이었다. 잠시 일을 처리하는 2시간 동안 온 신경이 곤두서며 예민하게 변해있는 나를 볼 수 있었다. 정말 작은 일인데도 짜증나는 말투로 이야기하고 트집아닌 트집으로 사람을 화나게 하고 있었는데, 내가봐도 나는 그냥 고집쟁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코로나 확진일지도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서, 처음 겪는 모든 일과 부족한 정보로 불안이 더 커져서 그랬던 것 같다. 할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나와 같은 마음으로 예민해진 다른 가족들을 보고는 더 심술부리면 안되겠다 싶어서 불안은 잠시 눌러뒀다.

아빠 차로 한번에 보건소로 향했다. 생각보다 사람이 없어서 금방 검사받을 수 있었다. 인적사항과 격리 통지서 수령증을 적고 - 자가격리키트와 안내문을 받아 - 검사용 면봉?과 용액?을 들고 - 부스로 가면 마스크를 잠시 벗고 면봉으로 코 속을 방문해주면 끝! 처음 해보는 검사인데, 정신없이 지나가서 그런지 먼저 검사했던 사람들의 후기와는 좀 달라서 당황스러웠다. 대부분 수치스럽거나 역하거나 더러운 느낌이 들었다는데, 나는 뭐... 코아파! 눈물찔끔! 하니까 끝나있었다. 바로 집으로 가라고 해서... 내일 아침 검사결과를 기다리며 집에서 일할 준비를 시작했다. 아까 다른 전화를 받으며 인적사항을 적으니 내 번호를 제대로 썼나 계속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연락이 안오면 어떻게하지..?’ 라는 생각이 맴돌았다. 그것도 어느새 몰려오는 상담전화에 잊혀졌다. 아침에 컴퓨터를 가지고오지 않았다면 일어났을 일들을 떠올리며 참 잘한 일이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나는 큰 안방에 내 아지트를 차릴 수 있게되었다.
확진핀정이 난 동생은 끝방에 일단 격리 시켜뒀는데, 구청에서 순서대로 픽업해간다고 들었다. 정각3시에와서 확진자를 검거해간 후, 집안을 전체 방역하고 나서 가족들의 격리가 시작된다했다. 동생을 픽업해 가시고, 30분 뒤에 하얀 비닐옷?을 입은 사람 두분이 중무장을 하고 오셔서 약을 뿌리고 가주셨다. 15분정도 대기했다가 들어가야 한다고 해서 문 앞 복도에 쭈그리고 앉아있었다. 불안함에 서성이는 엄마아빠를 보며, 나름 느긋해져보고자 눈에 들어올리 없는 책을 펴기는 했다. 한줄도 채 읽지 못하고 통화하는 아빠의 대화를 귀기울여 들을 수 밖에 없었다. 구청에서 온 전화가 분명했다. ‘전원 격리, 6월 9일 정오 해제’
듣자마자 급하게 필요한 연락을 돌렸다. 우선 정말 미안하지만 주말 약속을 취소하고, 교사회와 바이올린 레슨팀에만 말하면 일단락이었다. 몇 군데 없지만 결국 돌려야 할 연락을 돌렸다는 것과 미안한 마음에 괜히 또 투정과 짜증만 나왔다. 그래도 괜찮을거라고 말해주는 언니와 신부님의 통화 덕분에 조금은 차분한 마음으로 집으로 들어왔다.
아직은 격리된 상황이라는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저 하루가 정신없었고, 못한 일들을 다급하게 처리했고 무사히 정리 후에 늦은 점심을 먹었다는 것 뿐. 딱히 정신없이 바쁜날과 다를 것이 없었다. 계속 신경쓰이는 두가지는 - 내일 검사 결과가 음성이길 바라고, 나에게 코로나 소식을 듣게 된 사람들이 상처받지 않기를 기도해보았다. 막상 한쪽 구석에 이불을 깔고 누우니 옆에 누워야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 허전했다. 불끄고 잠들기 전까지 짧게라도 떠들다 잠들었는데, 없었다. 그래서 23시에 괜히 자는지 물어보고 전화를 걸어서 어땠는지 물었다. 다행히 몸살기는 나았고 밥도 잘 나오고 시설도 좋다는 이야기를 했다. 다행이라는 한편, 우리 둘다 오늘 하루 종일 갖고 있던 생각들을 꺼내어보았다.
“차라리 내가 혼자 걸리고 아프면 상관없겠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는 생각에 미안함과 스트레스가 더 크게 다가온다.”
확진보다 주위에 영향을 주는 상황들이 굉장히 싫다. 피해자와 가해자라고 얘기하기는 좀 그렇고 미안하긴 하지만 동생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닌 밤중에 날벼락으로 눈뜨자마자 코로나 확진에 대한 두려움으로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는 시간들이 싫었다. 아침에 화가 났던 이유는 직접 공무원이랑 통화하고 내용을 설명받은 동생과는 달리, 아무것도 모르는 가족들에게 전화나 문자로라도 말해줬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궁금해했는데, 방문을 열었더니 우리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먼저 말하는 상황이 원망(?)스러웠던 거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 이전에 내 정신은 이미 이렇게 될 줄 알고있었나보다. 그래서 미안하고 죄송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 미리 스트레스받고 예민할 수 있게 세팅해둔 것이라고 생각한다. = 하루종일 개예민.
일단 격리야 벌어진 상황이니, 내일 결과가 음성이 나오길 간절히 바래본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