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전환점
#최강 개베
잊고 싶었던 기억 중 하나로, 대학교 2학년 때 거의 타의로(왜 내가 된 건지 정말!!!! 모르겠다.) 동아리 회장을 맡았었다. 나는 여전히 분위기에 탑승하지 못하고 소극적이었다. 그래서 그땐 회장이라는 자리가 너무 싫어서 울었던 기억도 있다. 아빠는 그래도 좋은 기회일 것이라 잘해보라고 응원해주셨으나 하나도 응원이 되지 않았다. 부정적인 것들은 리더십이라고는 1도 없는데 회장이라는 이유로 13명의 후배들을 이끌어야 하고 윗 학번들의 선배들도 하나하나 챙겨야 했다. 언니들은 무서웠고 오빠들은 친절했던 것 같은데 제각각이었다. 그리고 제일 싫었던 것 중 하나는 회식자리만 생기면 하는 건배사다. 굳이 왜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연말 학술제를 끝으로 동아리는 끝났다. 왜냐면 그 밑으로 입학할 신입생이 없었기 때문이다.
너무 싫고 힘들던 기억뿐이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 1년간 질릴 정도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정말 많이 배운 것 같다. 내적으로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상처 받으며 치유되는 과정에서 그 나이의 수준에 맞게 조금씩 단단해졌고, 외적으로는 여러 사람들을 파악하고 돌보는 능력치가 +500,000 정도는 된 것 같다. ‘모든 사람이 날 좋아할 수는 없다.’고 이때 많이 느끼고 뻔뻔함을 얻었다.
#취미는 합창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나도 할 수 있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활동 중 하나로, 시작하게 된 계기가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행동했다는 점에서 큰 전환점이라고 생각한다. 전공자도 아닌 내가 음악과 관련된 다른 전공자들이 잔뜩 계시는 곳에서 함께 노래할 수 있었고, 혼나기도 많이 혼났지만 나름 칭찬도 받으니 점점 더 열심히 하면서 취미로 굳혀가게 되었다. 혼자 하는 노래가 아니라 합창이라, 다른 사람의 소리에 잘 귀 기울여야 하고 나의 소리도 적절히 낼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빛깔과 방향을 하나로 맞춰야 한다고 계속 지도해주신다. 내적으로는 노래 가사들이 다 예쁘고 힘이 되는 말들이라, 노래를 하면서도 즐겁고 특히 힘들 때 많이 생각나고 평화로워질 수 있는 포인트를 얻었다. 외적으로는 사람들 앞에서도 나설 수 있는 능력치가 오를 수 있던 전환점이다.
지금은 코로나로 마지막 연주를 하고 모이지 못한 지 1년이 되어가지만, 기회가 되면 어디서든 다시 노래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이다.
#익숙함에서의 탈피
또 하나의 큰 전환점은 이사였다. 집안 사정에 의한 강제 이사고, 보통 구를 넘나들지 않고 동네에서 움직인다고 하지만, 완전 동쪽으로 넘어오게 되었다. 한강에 가려면 1시간은 넘게 걸리던 거리가 지금은 걸어서도 갈 수 있을 정도였다. 20년간 익숙했던 주변 사람들이 바뀐다는 두려움 때문에 더 싫었다. 하지만 환상적인 타이밍으로 이전 사람들과의 관계는 적당히 정리가 되어 내적으로는 편안했다. 앞으로 다시 보려고 해도 노력하지 않으면 볼 수 없고, 노력하기에는 그 사람들에 대한 나의 감정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가장 많이 변한 건 주량과 생활패턴이다. 모든 사람들이 여유로워 보이고, 꼭 술자리가 아니어도 너무 재밌게 잘 노는 모습이 좋았다. 그래서 신기함에 나도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옛날에는 분위기에 취해서 술이 술을 마시는 상황이 많아서 부모님이 많이 싫어하셨는데, 이사 오고 나서는 이런 생각들이 변하게 되니 과하게 마시는 일도 줄어들었다. 그리고 익숙한 것보다 새로운 것을 찾고 도전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에 반해서 나도 더 열정적으로 움직이게 되었다.
= 나는 사람들과 부딪히면 맞춰주기 위해 에너지를 많이 쓰느라 힘들다고만 느끼고 적은 사람과의 만남과 관계만 좋아했다. 그리고 그런 사람 관계들이 피곤하다고만 느꼈는데, 3가지의 공통점이 사람들 속에서 배우고 사람들 속에서 성장(사회적 능력+++)했던 내 모습이 보인다. 당연한 말일 수도 있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보이고, 나를 돌아보며 더 좋은 모습을 배워서 자랄 수 있는 것 같다. 아, 그리고 생각보다 나는 외향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