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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렇게 해 주세요.Handal/한달쓰기 2020. 7. 6. 22:56
예스폼 인수인계서 엑셀서식 퇴사를 생각하며 내가 매일 하는 것들과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해야 했다. 사직서를 작성하기 직전 "인수인계서 작성하여 USB로 전달하겠습니다'라는 글부터 적었다. 그래야 나가고 나서도 깔끔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인수인계서에 다 털어버리는 것이 계획이었다. 내가 앞전 사수에게 받은 내용이 아무것도 없었다고 해서 나도 그대로 복수할 수는 없었다. 양심이 있지, 걱정인 것은 첫 직장에 5년째 막내로서 일만 받았지 일을 나누어줄 생각은 없었고, 나누어 줄 대상도 없었다. 갑자기 인수인계라는 이름으로 갖고 있던 일을 덜어내려니 싱숭생숭했다. 우선 무작정 적는 것부터 시작했다. 매일 기계처럼 하던 작업에 이름을 붙여나가기 시작했다. 역시 말로 대충 설명하고 정리하기보다 적어 내려가니 훨씬 보기도 쉽고 정리가 되기 시작했다.
개구리 올챙이적 기억 못 한다고, 내가 딱 그 모양이다. 어떻게 일을 시작했는지 기억도 안 나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알려줘야 할지 도무지 감이 안 잡힌다. 무작정 적어 내려간 업무 리스트는 너무 자잘하고 축약형으로 처음 보는 사람이 봐도 이해가 갈까 싶었다. 어떤 사람이 올 지 모르니 인계를 어느 정도까지 해줘야 할지도 문제고 걱정이다. 프로잡일러로 5년째 같은 패턴과 추가되는 업무로 재미없는 시기가 다가오니, 매일 해야 하는 작은 일들은 귀찮은 일들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냥 쉬워서 잔업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꼭 필요하고 매일을 버티는 중요한 일이기도 했다. 전에 생각했던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하는 생각과 다짐이 딱 지금 필요하다.
그렇게 정신없이 만난 새로 일을 도와주실 분은 내가 생각하기에 인상이 좋았다. 내가 할 수 없는 기술을 가지고 계셨고, 이쪽 업계의 일은 해보지 않았으나 천천히 업무를 드리면 배워서 도와주시겠다고 했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듯이 나도 기대를 내려놓아야 하고 판단도 하면 안된다. 그런데 자꾸 왜 많은 회사들이 경력직을 요하며 우대사항을 만들어 기재하는지 알 것 같았다. 준비를 열심히 했는데 허무하기도 했고, 상대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어도 교감은 할 수 있지만 업무적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았다. 정말 첫 술에 배부를 수 없으니 한 걸음부터 천천히 기본부터 밟아가야지.라고 열두 번씩 다짐해야겠다.
어딜 가나 누구에게 먼저 말을 거는 법도 없고 심지어 배달음식 주문도 어려워서 동생이나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해결되기를 기다리기만 하던 내가, 지금은 전화는 기본이고 진상고객도 상대하며 해야 할 말은 다 하고, 감정도 잘 드러내는 모습으로 변했다. 비단 이것이 업무적인 일과 스트레스 때문이라기보다는 사회적 능력치가 +1 상승했고, 다년간 잘 연마했으니 이 스킬을 사회적 능력치가 0인 사람에게 나누어서 함께 성장한다는 생각으로 일을 진행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글을 쓸 때만 훌륭하고 멋진 사람이 되지만 내일은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2020.07.31. 7월 6일의 나야. 왜 그렇게 답도 없는 첫인상을 생각했니, 김칫국은 마시지 말자.)